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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 투자 유치

2021년 3월 우리회사가 후속투자를 유치했다. 시드투자 이후 1년 5개월만이다.


서른이 넘고 어릴 때 보다 조금 더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삶의 여유와 안목이 생겼을 때 나는 내가 별로 잘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예술적인 재능이나 운동신경도 별로고 뭐 특출난게 하나 없던 것이다.


열 다섯살 때 부터 드럼을 치기 시작했는데, 나는 더블스트로크가 너무 하고 싶었다. 실용음악 학원을 다닐 여력이 되진 않았으니 혼자 연습해야 했다. 보통 r(right) l(left) rlrl 치는 것을 rrllrrllrrll 쳐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가운데 손가락에 굳은살이 생기고 물집이 터져서 막 피가났다.

아니, 다른사람들은 잘만하는데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드럼에 별로 재능이 없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어떻게 더블스트로크를 해내긴 했다.


특별히 잘난 것이 없는 덕에 끈기있게 조금씩 이루어 내는 습관을 얻었다.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뚝딱 해내는 것을 나는 잘안되니까 될 때까지 하는 수 밖에 없던 것이다.


조급한 마음으로 왜 안 되지 왜 안 되지 하며 일을 그르친 경우도 많고 아 이건 정말 안되는건가보다 하며 낙담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만족하기전에 포기한 기억이 별로 없다.


누군가는 열 아홉에 해커가 되고, 변성기가 오기도 전에 프로 바둑기사가 된다. 한 뮤지션이 10대 때 쓴 노래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랑받는 경우도 꽤 있다. 과학고, 카이스트를 졸업한 후 원하는 아이디어를 일주일만에 버그하나 없는 IT제품으로 내놓는 사람도 봤다. 천재가 아닌 나는 죽어라 할 수 밖에 없다.


이번에는 정말 죽을 뻔 했다. 코로나 사태로 우리 서비스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야 했고, 나는 그렇게 1년을 버텼다. 7명이 출근하는 사무실에 갑자기 할일이 없어졌을 때 찾아오는 절망은 건너야하는 다리가 갑자기 무너져 내린 것같은 참담함같은 거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헤엄쳐서 그 강을 건너는 것이었다.


나는 오늘을 기억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거의 포기할 뻔 했기 때문이다. 매일밤 불안함에 잠이 안오고 수십 번의 거절 이메일에 스트레스가 쌓여 체중도 늘어나고 흰머리도 많아졌다.


그래도 이 글을 쓰게 됐다는 것은 끈기가 이바닥에서 재능일 수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아니 뭐 그렇지 않아도 좋다. 이번 일로 여태까지 해 온 대로만 하면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위안과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 시작이라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작은 성과들은 항상 중요하다. 끈기를 보상받으며 조금씩 이겨내다 보면 어느새 버티는 습관이 이기는 습관으로 바뀌어있을 테니까.

유튜브가 없던 시절, 요시키의 드럼솔로영상을 구해서 적어도 2,000번 이상 돌려본 것 같다.


이제 고작 더블스트로크를 하게 됐지만 언젠가는 나도 그처럼 수 만명 앞에서 사방에 물을 튀기며 스내어를 부술기세로 두드리는 아티스트가 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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