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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당근이다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답을 찾아 사피엔스, 총균쇠, 이기적유전자를 연달아 읽었다. 간단한 사회현상에도 괜히 다윈과 자연선택을 들이대며 유목생활을 하던 오래 전 인류를 떠올리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지면서도, 21세기 인류의 최대 관심사인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 정의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행복은 당근이었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에 따르면, 지금까지 자연적으로 선택되어 살아남은 유전자들은 자기들이 자리잡은 숙주(인간)를 어떻게든 생존하여 번식하게끔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 그 숙주의 후손인 새로운 숙주에 또 올라탈 수 있다. 우리 사피엔스는, 아니 모든 생물은 그렇게 생존해 왔다. 혹은 그런 유전자들이 자연스럽게 선택되어 왔다.


유전자는 생존과 종족 번식의 길로 숙주를 인도해야 한다. 마치 당나귀에 올라앉은 기수처럼 당나귀를 잘 길들여서 그 당나귀가 다 늙어서 움직일 수 없을 때 쯤 다른 당나귀로 갈아탈 수 있도록 환승역까지 어떻게든 도달해야 하는데,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주로 앞쪽에서 당근으로 유도하고 가끔은 뒤쪽에서 엉덩이를 채찍으로 내리치는 것이 잘 먹힌다.


여러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나는 당근을 행복으로, 채찍을 스트레스로 정리했다. 어떤 사람은 쾌락/불쾌 혹은 만족/불만족 등으로 표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당나귀 위에 올라 앉은 기수는 생각보다 쉽게 당나귀의 발걸음을 조종할 수 있다. 당근을 묶어 놓은 막대의 방향만 돌리면 된다. 우리의 유전자(기수)는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쪽으로만 막대를 튼다.


단 것이나 기름진 것을 먹을 때 얻는 행복은 수 백 만년 동안 먹을 것이 부족했던 인류에게 높은 칼로리를 보충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적인 당근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때 얻는 행복은 인간이 집단 생활을 시작하면서 사회화가 생존과 섹스 가능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을 반영한다.


남성이 사정할 때 느끼는 단 1초의 행복은 5분만 지나도 또 찾게 될 만큼 달콤하다. 실제로 많은 연구들에 의해 이 짧은 쾌락이 지구에 무려 70억 명이 넘는 인간이 있다는 것의 가장 큰 요인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행복은 나의 목표입니다”. “행복하게만 살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하지만 행복은 우리 몸에 남겨진 수 백만년의 세월동안 자연선택에서 살아남은 생존본능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에 불과하다. 목표로 삼을 만한 유형의 무언가가 아니다. 마치 이것이 인생의 전부인 것 처럼, 혹은 무슨 행동의 목표인 것처럼 여기게 되는 순간 우리는 당나귀에 머문다. 현대 인류로서 부끄러운 일인 것이다.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가 말하길, 이제 우리는 호모 데우스다. 진화의 다음 단계, 신이 된 인간이다. 고작 당나귀라니, 초라하다.


위협을 느낄 때 오는 신체의 고통, 그리고 번식을 돕는 행복, 아니 모든 호르몬 작용들은 그냥 단순한 화학 작용인 것이다. 생존과 번식만을 쫓는 몸 속의 유전자(당나귀 위에 올라탄 기수)와는 다르게 우리는 각자의 목표와 가치관이 있다. 어쩌면 그 목표와 가치관을 쫓는 과정에서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행복이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가치관과 오랜 시간동안 생존만을 쫓아온 우리 유전자의 방향성은 자주 다르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불편함을 느낄수록 나와 우리 직원들의 목표에 가까워지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 퇴근을 하면 기름진 음식에 맥주한 잔을 곁들여 마음껏 거실 바닥에 널부러지기로 했다. 스트레스와 행복은 나의 목표를 이루는 것과는 별개다. 오히려 적절히 이용하면 되는 것이다.


눈 앞에 있는 당근을 거부하라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당근을 매달고 있는 기수의 오랜 의도를 파악 하는 것(위에 언급한 책 세권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당근 너머의 내 가치관을 찾아 달려가는 것에 있다.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행복에서 자유로워 지는 것이다.


당나귀가 될 것인가, 기수가 되어 그 것에 올라탈 것인가. 이 것은 고통과 행복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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