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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기적 유전자

서점에 가면 인문학과 경제, 경영 쪽으로만 얼쩡거리던 나는 어느 날 용기 있게 이 두꺼운 책을 집어 들었다. 사피엔스를 읽은 이후 ‘빅히스토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나는 누구인가’ 가 아닌 ‘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더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19년 9월이었다. 이기적유전자를 다 읽고 꽤 큰 충격을 받았다. 아마도 지금까지 내 삶에 가장 큰 변화를 준 책이 아닐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생물학은커녕 과학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다가, 수 십 억년 전 우연히 생긴 단세포에서 시작하여 이토록 복잡한 현재의 지구생태계에 이르기까지 전 세월을 관통하는 매우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접하게 되니 마치 ‘하늘이 움직이는 줄 알았더니 땅이 움직이더라’ 하는 것과 같은 충격에 휩싸인 것이다.


요약하자면 저자는 유전자가 진화의 주체이며, 생물학적 개체는 생식활동을 통해 그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한다고 말한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유전자가 자연스럽게 더 많은 개체 속에 자연 선택되는 것이다. 개체는 숨이 끊어져도 유전자는 그 다음 세대에 남아 존속하고, 나와 당신은 그렇게 살아있다.


1970년대 초판이 출간된 이후 제목의 ‘이기적’이라는 말과 더불어 내용 중 반복해서 강조되는 ‘인간은 프로그래밍된 생존기계’라는 표현이 논란이 되어왔다. 우리는 단지 생존과 번식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이기적인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로봇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 문명인들이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인간의 존엄이나 행복은 유전자의 관심 밖이다.


어떤 사람은 이 책을 읽고 허무주의에 빠졌다고 한다. “결국 나는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생존하다가 번식하고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면 죽게 되는 ‘고작 그런 것’이라니!”


하지만 저자의 다소 자극적인 표현이 오해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그런 뜻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유전자결정론은 다분히 결론적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설명이자 학문적인 이론이지 우리가 유전자의 의도에 복종해야 한다거나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책은 매우 긴 시간 동안 진행된 생물 진화의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개념을 매우 일관적이고 설득력 있게 제시함으로 인해 ‘우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더 객관적으로 답할 수 있게 하고 나아가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더 깊고 넓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자문하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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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과 리처드 도킨스를 제대로 접하고 벌써 4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그들이 정리해둔 개념에 너무나 심취한 나머지 모든 사회 현상과 인간 본능을 진화심리학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또 그 이후에도 책을 들췄다 덮었다 하면서 내용을 잊지 않도록 반복해서 읽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현생 인류는 지구상 1,400만개의 종 가운데 생물 진화의 비밀을 알게 된 유일한 존재라는 것. 그리고 이 과학혁명은 생물의 역사, 아니 300만년의 인류의 역사와 비교해도 너무나도 최근에, 그리고 빠르게 진행했다는 것.


사실 우리 몸속에 남아있는 유전자는 최대 35억년을 살아남은 터프한 놈들이지만 현생 인류에서는 많은 경우 오작동한다.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도 칼로리 높은 음식을 먹으라고 하며 창의력이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대에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라고 지시한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유전자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이어트에 성공하며, 하늘을 나는 것, 전세계의 정보를 보이지 않는 곳에 0과 1로 저장해 두는 것에 성공했다. 이제는 인공수정을 통해 특정 유전자가 배제된 아이를 임신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결국 우리는 유전자마저 정복하고,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를 추구하며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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