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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조부 투파키는 모든 것을 해보고 모든 곳에 있어봤기 때문에 결국 어디에서도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無에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진리를 찾는 여정과 비슷하다. 살아감의 의미, 존재의 가치를 탐구하는 것은 노력하면 할 수록 모른다는 것만 더 뚜렷해지기 때문에 결국 허무해진다.


톨스토이는 '우리 모두는 끝내 죽는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죽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에블린은 무한대에 가까운 다중 우주 속 모든 자신을 다 겪어 본 이후에도 결국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지금을 살아갈 의미를 찾게된다.


칼 세이건은 보이져호가 촬영한 사진 속에서 거의 잘 보이지도 않는 창백한 푸른 점, 지구를 "home" 이라 했다.


세계관의 확장은 자칫 눈앞의 살아감을 초라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140억년 우주의 역사, 300만년의 인류진화의 과정, 무한의 멀티 유니버스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금, 나누어 먹는 쿠키라는 것을 기가막히게 보여준 끝내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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